COLUMN 장은주(영산대학교/철학) ‘12.3 내란 사태’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작년 12월 3일, 한 미치광이 대통령에 의해 하마터면 한국의 민주주 의가 무너져 내릴 뻔한 사건이 일어났다. 4월 총선에서 집권 여당이 대패하여 새로 구성된 국회에서 야당들이 그의 정책들을 봉쇄하며 그의 사퇴를 압박하자, 그는 계엄령을 통해 아예 국회를 해산하고 야 당 지도자들을 감금함으로써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무시무시 한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다행히 국회의원들이 신속하게 대응하고, 시민들이 국회에 출동한 군인들을 막은 데다, 젊은 군인들 또한 상관 의 부당한 명령에 적극적으로 따르지 않은 덕분에, 대통령의 친위 쿠 데타는 빠르게 종결되었다. 그러나 후폭풍이 만만찮다. 군부의 주동자들이 체포되고 국회에서 탄핵이 의결된 뒤에도 대통령은 체포, 구속되기까지 한 달 이상 관저 에 머물며 법집행에 저항하는 농성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검사 출신인 윤석열은, 기소권은 물론 수사 권까지 독점하고 있는 한국의 검찰이 가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막강한 권력을 바탕으로 일종의‘사법적 쿠테타’를 통해 대통령이 된 인물로, 집권 중 반공주의와 신자유주의에 충실한 전통적인 한국 보 수파의 노선을 따랐다. 그러나 그는 노골적인 친-기득권 정책을 펼친 데다 자신과 부인을 둘러싼 온갖 부패 의혹때문에 폭넓은 대중적 지 지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불법적 친위 쿠데타로 탄핵을 당하고 처벌받을 위기에 몰리자, 그는 부정선거 의혹을 확산하고 중 국이 한국을 점령하려 한다는 음모론을 펼치면서 지지자들을 선동 하는 극우 포퓰리스트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여당인 국민의힘 도 그의 편을 들었다. 그러자 그의 계엄령을 지지하고 탄핵에 반대하 는 여론이 더 크게 늘어났고, 여당 지지율도 크게 올랐다. 이는 한국에서도 미국과 유럽을 휩쓸고 있는 극우 포퓰리즘의 물결 이 몰려오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윤석열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 된 1월 19일에는 일단의 폭도들이 법원에 난입하여 폭동을 일으킨 사 건까지 일어났는데, 이‘1.19 폭동’은 2021년 1월 6일 미국에서 트럼 프 대통령이 자신이 패배한 선거 결과를 부정하며 지지자들을 선동 하여 의회를 습격하게 했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이 사건은 갑작스럽 게 세력을 키운 한국의 극우 포퓰리즘이 심지어 폭력적 파시즘으로 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자아내었다. 폭민들( mob ) 과 일부 정치인들이 일체화되어 민주적 헌정 질서를 부정하는 태도 마저 드러내고 있다. 한국 사회의 저변에 흐르고 있던 극우 포퓰리즘 의 에너지가 한 순간에 폭발적으로 응축되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한국에는 미국이나 유럽처럼 이주민 문제가 심각하지는 않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변화된 세계 경제 환경은 한국에서도 극우 포퓰리즘이 준동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만들어냈다. 경 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불안정고용이 확대되었으며, 유동적인 금융 1 자본 시장의 영향력이 커졌다. 또 중국이 경제적으로 급부상하면서 많은 한국 기업들이 경쟁력 하락을 경험했다. 이런 과정에서 낙오되 거나 지위 하락을 경험한 수많은 대중들이 일부 개신교 교회가 주도 하는 한국 극우 운동에 포섭될 위험에 노출되었다. 이 운동은 전통적 인‘반공주의’를‘반중’ 노선으로 연결시키며 세를 키워 왔다. 게다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고 페미니즘의 목소리가 드세지는 데 대한 청년 남성들의 백래쉬 현상은 한국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된다. 그리고 세계 여느 곳에서처럼 유튜브와 각종 SNS 는 극우주의자들의 억지 주장과‘가짜 뉴스’를 확산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한국 정치는 극우 포퓰리즘의 정 치적 승리를 위해 더 없이 좋은 발판이 되고 있다. 결선투표제 없는 한국의 이른바‘제왕적’ 대통령제와 국회의원의 5분의 4 이상을 단순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선출하는 제도는, 국내정책적으로 별 차이가 없지만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두 거대정당 중심의 정치체제를 만들 어냈다. 지금 집권 보수 정당인‘국민의힘’은 불법적인 계엄 선포로 국회로부터 탄핵당한 대통령과 거리를 두기보다는 오히려 그의 편 을 들기로 결정했고, 탄핵에 반대하는 극우 포퓰리즘 세력과 일체가 되었다. 이는 미국에서 애초 공화당 안에서도 이단에 가까웠던 트럼 프가 공화당의 주류가 되고 재집권에 이르게 된 과정과 유사하다. 거 대 양당이 정치를 지배하는 대통령제 국가인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 이 전개될 수도 있는데, 정확히 국민의힘이 노리는 바다. 비록 윤석열 이 다시 대통령으로 복귀할 수는 없어도, 한국 민주주의의 주축 정당 인‘국민의힘’은 재집권할 가능성이 크고 그럴 경우 윤석열은 사면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커다란 위기에 처했다. 물론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탄핵을 인용하고 두 달 뒤 새 정부가 구성됨으로써 12.3 계엄 령으로 크게 흔들렸던 헌정 질서는 일단 회복되기는 할 것이다. 그러 나 새로운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의 후보가 쉽게 승리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고, 설사 그런 경우에도 민주당 정부가 극우로 치닫고 있는 대중들의 불만을 제대로 잠재우지 못해 5년 후에는 다 시 미국처럼 더욱 강력한 극우 정부를 불러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실 윤석열 대통령은 앞선 민주당 정부가 경제 정책 등에서 보 인 무능이 빚어낸 산물인데, 비슷한 일이 반복될 수도 있다. 만약 극 우화한‘국민의힘’이 올해 봄이든 5년 후든 다시 집권에 성공한다면, 그 때 한국의 민주주의는 헝가리 같은‘비-자유( illiberal ) 민주주의’, 곧 선거라는 형식만 유지되는 권위주의 체제로 전락해버릴 위험이 있다. 민주당을 비롯한 한국의 민주 세력은 극우 세력의 준동과 집권을 막 고 민주적 헌정질서를 지켜내기 위해 정치적 대전환을 시도해야한 다. 무엇보다도 극우 포퓰리즘이 발흥할 수 있는 사회적 토양이 확산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성장 동력을 유지하고 경제적 활력을 잃지 않 도록 관리하면서도 확고한 복지와 재분배 정책을 통해 기층 인민들 의 사회적 소외를 막아낼 수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 전 세계의 중도 좌파 정당들은 곳곳에서 이런 방향의 정책적 수단을 제대로 마 련하지 못한 채 정치적으로 패배하고 있는데, 한국의 민주당이 앞으 로 어떤 선택을 할지 두고 볼 일이다. 다른 한 편, 이번 12.3 계엄 사태로 내적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낸 지 금의 헌법 질서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할 필요도 커지고 있다. 그동 안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는 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의 권력을 분 산하는‘분권형 대통령제(준-대통령제)’를 도입하거나 아예 내각제 로 전환하자는 요구가 오래전부터 분출해 왔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도 독일 식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전면적으로 수용하여 다당제를 유 도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두 거대 정당의 적대주의 정치가 완화될 수 있고, 다양한 정치 세력 사이의 타협과 조율을 통한 정치가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제도에서 과도한 정치적 이익을 누리고 있는 한 국의 두 거대 정당은 지금껏 이런 정치 개혁의 과제들에 대해 아주 소 극적이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시급하게‘전투적 민주주의( streitbare Demokratie )’ 또는‘방어적 민주주의( wehrhafte Demokratie )’를 위 한 제도적 장치들을 새롭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 사실 한국은 독일 을 모방하여 헌법재판소를 두고 있으며, 한 좌파 정당을 친북적이고 위헌적이라며 해산시킨 경험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방어적 민주주의 제도는 그동안 권위주의 성향의 정부가 비판 세력의 견제 를 탄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악용되어 온 측면이 크다. 지금 필요한 건 극우적 선동과 가짜 뉴스를 퍼 나르는 유튜브나 SNS 에 대한 감 시와 통제, 극우 인사들이나 정치인들의 공적 혐오 발언에 대한 폭 로와 비판 같은 조치들을 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들이다. 나아 가 학교와 시민사회에서 시민들의 건강한 민주적 시민성을 계발하 기 위한 시민교육의 강화도 필요하다. 한국의 시민들은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 때 마다 적극적 저항과 참 여를 통해 민주주의를 구해 낸 위대한 전통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한 국 시민들은 이번 윤석열의 계엄 선포를 처음에는 AI 가 만들어 낸 가 짜 뉴스 정도로 여겼는데, 그만큼 계엄은 너무도 시대착오적이었다. 이것은 한국 사회에 민주적 삶의 양식(또는 민주적 에토스)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가 여러 차원에 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한국 시민사회의 축적된 민주적 역량은 다시금 이 위기를 극복하고 더 건강하고 활력 있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것이다. 2 저자 소개 장은주 영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정치철학자다. 어떻게 하면 한 국 민주주의가 좀 더 안정되고 성숙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필요 한 철학적 인식을 다듬는 게 주된 관심사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 는 괴테 대학에서‘비판사회이론’을 공부해서 학위를 받았는데, 한국 사회의 고유한 삶의 문법과 발전 동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독자 적인 이론을 만들고 싶어 한다. 최근에는 시민들의 민주적 역량 함양 을 위한 민주시민교육에 관심이 많다.<인권의 철학>,<정치의 이동>, <유교적 근대성의 미래>,<시민교육이 희망이다> 같은 책을 썼다. 최근에는<공정의 배신>,<공화주의자 노무현>을 발표했다. Imprint 발행 기관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한국사무소 (03133) 서울시 종로구 돈화문로 49, 5층 Info.korea@fes.de 이미지 출처 첫 번째 페이지 상단: Friedrich-Ebert-Stiftung Brand Library 칼럼 내용은 본 재단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 단이 발간한 출판물은 서면동의 없이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될 수 없으 며, 선거 운동 목적으로도 이용될 수 없습니다. 2025년 3월 © Friedrich-Ebert-Stiftung e. V. 본 재단의 추가 간행물을 확인하시려면 아래 주소를 참조해 주세요: ↗ korea.fes.de/ko/publications Korea Office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