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 :인권 이주 젠더 이지연(이화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학센터) 목 차 I. 서론 2 II. 기존 연구 검토 및 연구 방법 3 III.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의 역사와 특징 6 IV. 해외 북한식당 형성과 평양 여성들의 인식 변화 12 V. 해외 북한식당의 노동과 일상에서의 규율 16 VI. 결론 및 함의 24 참고문헌 26 1 Ⅰ. 서론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은 2000 년대 본격적으로 증가하였다. 1990 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경제는 국내적·국제적 차원에서 구조 변동을 겪었다. 그 변동의 흐름에서 나타난 현상 중 하나가 바로 북한 국가가 교류하는 국가에 자국민을 노동자로 선발·파견해 이로 벌게 된 외화를 당국으로 유입시키는 일이 활성화된 것이다. 2000 년대부터 본격화된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은 탈냉전 이후 전지구적 시장 경제 및 국제 이주 레짐 하에 북한이 편입되는 과정 속에서 북한‘나름의’ 이주노동자가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자들은‘외화벌이 일꾼’이라고 불린다. 해외로 파견되는 인력들은 우선적으로‘토대’가 좋아야 하며 대체적으로‘평양’ 출신자들이다. 북한 당국은 파견 전 선출 과정에서부터 해외에 나가는 북한 사람들을 철저하게 선별하는데 분야를 막론하고 공통 기준은 바로 출신 성분이다. 해외 파견 노동은 북한 시민들( 평양 시민들 중심) 에게 해외에 나가‘돈’을 많이 벌어올 수 있는( 당국이 많이‘떼어간다’ 하더라도 북한 내에서보다는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로, 선출 과정에서‘뇌물’을 주고서라도 파견되길 바라는 ‘일자리’이다. 특히, 최근 평양의 젊은 세대들에게 해외 파견 노동은 북한 밖으로 나가 해외를 경험할 수 있는 몇 안되는 통로로서 선망의 일자리로 인식되고 있다. 2010 년 이후 김정은 정권 시기에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의 규모는 상당히 증가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북한 해외 파견 노동으로 얻은 수입이 상당 부분 당국의‘충성 자금’으로 들어가 북한 정권의‘통치 자금’으로 운용된다는 비판이 함께 등장하였다. 그리고 국제 사회에서 북한의 파견 노동이‘인권 침해’라는 보고서들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북한이 파견 노동을 통해 취득한 외화가 김정은 정권 유지와 핵무기 개발 등에 기여하는 자금이며, 북한 인민의 노동력을 도구적으로 착취하는 인권 유린 행위라는 담론이 형성된 것이다. 결정적으로, 2017 년‘UN 대북제재 결의안( 제 2397 호)’에 북한의 파견 노동을 금지하는 항목이 포함되면서 북한 해외 파견 노동은 국제 사회의‘규제’ 대상이 되었다. UN 대북제제 결의안으로 인해 한편에서는 북한 해외 파견 노동 규모가 위축되었다. 그러나 북한과 파견국은 이전보다 비공식적이고 편법적인 방법으로 파견 노동을 지속하면서, 실제로는 파견 노동자들이 더 열악하고 불안정한 환경에 놓이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과 관련된 기존 문헌들은 주로‘인권’의 관점에서 비판하는 보고서와 논문들이며, 그 수도 많지 않다. 현재 북한 해외 파견 노동과 관련된 연구 자체가 많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즉,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을 다양한 측면에서 다루는 관점 및 이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경험 연구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2 이 연구는 기존의 인권 관점에서 이뤄진 연구 경향을 탈피하여, 북한 해외 파견 노동을‘이주’ 노동의 한 형태로서 다루면서‘젠더’ 관점을 통해서 해석해보고자 한다. 현재 북한 해외 파견 노동은 젠더화된(gendered)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해외 파견 노동 인력 구성을 살펴보면, 남성들은 파견국에서 주로 벌목공, 건설업 등 육체노동자로, 여성들은 봉제업, 식당 등 공장노동자나 서비스업 노동자로 성별화되어 있다. 가령, 냉전 시기 해외에 파견된 북한 인력들은 모두 남성이었고, 소수의 숙련공이거나 전문가였다. 그러나 2000 년대 이후 해외파견 인력이 급증하고 여성들도 파견되기 시작했다. 해외에 파견된 남성노동자들은 주로 러시아와 중동의 벌목공 및 건설노동자로, 여성노동자들은 주로 유럽과 중국 등 봉제 공장의‘봉제노동자’로, 그리고 해외 북한식당을 공격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하면서‘식당봉사원( 접대원)’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이 글은‘해외 북한식당’을 사례로 하여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의 과정과 그 효과에 대해 젠더 관점을 가족 경험적으로 접근해보고자 한다. 해외 북한 식당에 대한 연구 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에, 해외 북한 식당의 역사나 운영 방식, 특징들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나 분석조차 부재한 상황이다. 해외 북한 식당에 파견된 여성 노동자들의 경험과 전략, 내러티브 등에 대해서는 더욱 논의된 바가 없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해외 북한 식당과 관련하여 크게 두 가지 부분을 구체적으로 밝혀보자고 한다.(1)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을 젠더 관점을 가지고 그 역사와 특징을 분석할 것이다.(2) 그리고 해외 북한식당의 역사적 형성 과정과 그 독특한 특징을 설명하면서 그간 비가시화되었던 북한 식당에서의 노동 규율 및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행위성을 해석할 것이다. Ⅱ. 기존 연구 검토 및 연구 방법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을 다룬 연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2015 년 전후이며, 인권(human right) 의 관점에서 북한 파견 노동에 대한 현황 보고서들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이 보고서들은 북한이 해외에 인력을 보내는 과정과 노동 통제와 임금 착취 그리고 이 파견 노동으로 벌어들인 외화가 북한 체제의 통치 자금으로 운용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인권 유린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 착취적 행태를 통한 외화 획득을 북한 정권의 통치 자금을 확보하는 기제라는 입장을 뒷받침한다. 1 1 윤여상·이승주, 『북한해외노동자 현황과 인권실태』( 서울: 북한인권정보센터, 2015); 윤여상·이승주. 『북한 밖의 북한: 폴란드, 몽골 북한 해외 노동자의 삶과 인권실태』( 서울: 북한인권정보센터, 2016); 이애리아·이창호, 『연해주 지역 북한 3 위 연구들은 주로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이‘강제 노동(forced labor)’으로 규정될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하였다. 당시 러시아와 중동, 유럽, 중국 지역에 파견된 벌목공 및 건설 노동자들의 증언과 현지답사 결과를 주요 자료로 분석하여 파견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생존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분석하고 있다. 2 이와 더불어 북한 해외 파견 노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정책적 차원과 국제관계적 차원에서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지 모색하는 연구들도 조금씩 수행되었다. 3 다만 최근에는 북한 해외 파견 노동을 강제 노동으로 규정하기보다‘이주 노동(migrant labor)’으로 접근할 것을 제시하는 입장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 연구들은 강제 노동으로 규정지을 때 북한 노동자들의 삶의 전략과 행위성 등을 비가시화하고 피해자화한다는 점을 비판하면서 다각도에서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들을 다룰 수 있어야 된다는 시각을 제시한다. 4 특히 윤애림은 국제적·국내적 수준의 노동법과 규약들을 검토하면서 이주노동으로서 북한 해외 파견 노동을 다룰 것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였다. 5 앞으로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을 다루는 연구는 인권 관점을 넘어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사회문화적 접근을 하는 경험적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은 실정이다. 경험 연구가 적은 이유에는 자료 수집이 녹록치 않다는 점도 중요한 난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북한 해외 파견 노동과 관련하여 정확한 통계 자료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질적 자료를 얻기도 매우 어려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우선, 현지에서 북한 해외 파견 노동자들은 외부와 차단된 형태로 북한 당국의 통제를 받는 단체 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그들과 인터뷰를 하기 매우 어렵고 또한 남한 연구자들에게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또한, 해외 파견 노동자들 중에서 노동자의 실태와 인권』( 서울: 통일연구원, 2015); 이상신·오경섭·임예준, 『북한 해외노동자 실태 연구』( 서울: 통일연구원, 2017). 2 Rim, Yejoon,“Human rights of North Korean migrant workers: Opportunity to work or risk of forced labour?” Netherlands Quarterly of Human Rights Vol. 35, No. I(2017), pp. 51~68; Breuker, Remco and Imke van Gardingen(eds.), People for Profit: North Korean Forced Labour on a Global Scale(Leiden Asia Centre Press, 2018). 3 이용희,“북한 노동자 외국 파견 정책의 추이와 전망,” 『국제통상연구』, 제 21 권 4 호(2016); 최영진,“환동해권 체제이행국가의 평화구축 방안: 중국, 러시아 및 몽골에서 북한노동자들의 인권침해 사례를 중심으로,” 『평화학연구』, 제 17 권 1 호(2016); 최영윤,“북한 해외 노동자 현황: 통계데이터 중심으로,” 『 KDI 북한경제리뷰』, 2017 년 2 월호(2017). 4 이철수·이다혜 외, 『북한을 파견하다』,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2020); Lankov. Andrei, Peter Ward and Kim Jiyoung, “The North Korean Workers in Russia: Problematizing the“Forced Labor” Discourse,” Asian Perspecitves, Vol.44, No.1(2020), pp.31~53. 5 윤애림,“이주노동의 맥락에서 본 북한 해외파견노동자의 문제,” 『민주법학』, 제 73 호(2020), 191~219 쪽. 4 탈북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북한이탈주민들 중에 해외 파견 노동 출신자는 매우 극소수일 뿐만 아니라 가능한 자신의 이력을 노출하고 싶어하지 않는 경향이 크다. 이 연구는‘이주 노동’ 차원에서 살펴봐야 한다는 논의는 제시되었지만 실제로 경험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 이에 더하여 젠더화’(gendered)된 문제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발한다. 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해외 북한식당’은 북한 해외 파견 노동의 젠더화된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점이다. 이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연구 방법은 바로 해외 북한식당과 관련된 여성 노동자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삶의 경험과 내러티브를 해석하는 것이다. 해외 파견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수행했던 기존 보고서나 연구에서도 인터뷰 대상자들은 거의 러시아나 중동, 중국에서 일하다가 탈북한‘남성’ 노동자들이었다. 즉, 인터뷰를 수행한 기존 연구에서도 여성 노동자에 대한 인터뷰는 거의 없다. 자연히 기존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 현황 연구들이‘젠더 중립적(gender-neutral) 인 것처럼 서술되지만, 대부분‘남성 노동’ 중심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점도 인지해야 할 부분이다. 북한 해외파견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현장 연구 및 인터뷰는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우선 현지에서도 북한식당 접대원은 식당 업무 외 외부인과의 접촉이 절대 금지되어 있기에, 현지조사를 한다고 해도 인터뷰를 할 수 없다. 북한식당 접대원 중 탈북한 사람은 매우 드물고, 그들이 남한에서 살고 있다 하더라도 과거 신분을 밝히지 않아 인터뷰 수행 자체가 매우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이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인터뷰 대상자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과연 연구를 진행해나갈 수 있을지에 확신을 갖기 어려웠다. 그러던 와중 기존에 라포를 형성하고 있었던 북한이탈주민 여성을 통해서 해외 북한식당에서 일했던 여성을 소개받아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되면서 비로소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후 북한식당 여성노동자 뿐만 아니라 북한 안팎에서 요식업, 관광업 등 관련 업종에 종사하거나 연관된 정보 및 관계를 갖고 있었던 북한이탈주민 총 5 명을 인터뷰하였다, 5 < 표 1> 인터뷰 참여 리스트 순번 출신지역 관련지역 파견시기(*) 관련 경력( 기간) A 평양 캄보디아 2010 년 이후 북한식당 노동자( 약 4 년) B 평양 중국 2010 년 이후 북한식당 노동자( 약 3 년) C 평양 유럽 2010 년 이후 봉제공장 노동자( 약 2 년) D 나진 북한국내 2000~2010 년 초 외국인( 중국인 관광객) 안내통역원 E 평양 중국 2000~2010 년 초 가족 중 북한식당( 중국 등) 지배인 * 파견년도는 해외 파견 노동자들에게 신상을 추정할 수 있는 민감한 영역이기에, 파견시기는 해외 북한식당 운영이 여러 국가에서 활성화되기 시작한 2010 년대를 기준으로 하여 그 전과 후로 표기함. Ⅲ.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의 역사와 특징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의 역사는 크게 냉전기와 탈냉전기로 구분할 수 있다. 1990 년 이전인 냉전 시기에는 사회주의권 국가들과의 교류 차원에서 해외 파견 노동을 실시했다. 2000 년대부터 북한 해외 파견 노동은 북한 국가가‘경제적’ 목적을 가지고 해외 다른 국가들에 북한 노동자들을 파견하여 외화를 획득하는, 소위‘외화벌이’ 사업으로 불리게 되었다. 파견 국가로는 중국과 러시아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아시아, 아프리카 및 유럽의 포스트사회주의 국가들을 포함하여 20~40 여 개국에 이른다. 이 국가들에서 북한 파견 노동자들은 자국민의 임금 수준보다 낮은 임금을 주고 산업별로 활용할 수 있는 해외 인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북한 파견 노동자들이 현지에서 벌은 달러가 북한 국가로 유입되는 것이기에 북한 해외 파견 노동은‘외화벌이’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1990 년대 이전 냉전 시기는 김일성 집권 하에 북한 체제가 지속된 시대로 해외 파견 노동은 사회주의권 국가들 간 결속을 다지는‘정치적’이고‘상징적’인 가치를 갖고 있었다. 최초의 해외 파견 노동은 1948 년 소련으로부터 시작되었고, 1960 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소련에 벌목공을 파견하면서 파견 규모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1970 년대에는 아프리카 국가들과 동맹 간 결속을 강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북한 노동자들을 해당 국가들에 파견해 대통령궁이나 의사당 등을 건설하였다. 김일성 정권 하에서 교류국에 파견한 북한 노동자들의 인력은‘무상’으로 파견되었고 파견 노동자들은 모두 국가가 직접 소수의 인원들을 목적에 맞게 차출하고 6 관리하였다. 이처럼 냉전체제 하에서 북한이 국가 간 동맹 관계에서의 결속과 위상을 유지하기 위한 국제 관계 속에서의 정치적 목적 하에 수행된 방식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6 그러나 1990 년 이후 동구권이 무너지고 탈냉전의 시기가 도래하면서 글로벌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새롭게 국가 경제를 관리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그 과정에서 북한은 1990 년 중반 고난의 행군이라는 경제사회적 위기를 경험했고, 이후 북한 체제는 국내적·국제적 차원에서 이전과는 다른 국가 경제 운영을 모색하게 된다.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도 이러한 변화 속에서 북한의 국가 경제 운영 차원에서 본격화되었다. 김정일이 집권한 이후 해외 파견 노동은 집중적인 중요 국가사업을 되었다. 해외 파견 국가의 규모도 전지구적으로 확대되었는데, 김일성 집권기에 러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에 한정되어 있었다면, 김정일 집권기에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유럽 등 45 여 개국으로 증가했다. 7 김정은 집권기에는 해외 파견 노동 대상 교류국은 약 25 개 국 내외로 줄어들었지만, 해외 파견 노동 규모는 증가하였다. 한편에서는 유엔의 대북 제제로 인해 교류국이 줄어든 부분도 있지만, 선택과 집중의 전략으로 교류국 내의 북한 노동자들의 수요와 공급을 맞춰 지속적으로 외화 획득을 최적화하는 패턴이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8 특히, 중국과 러시아, 중동 및 동남아시아에서 파견 노동은 파견국의 산업 구조에 맞춰서 점차 구조화되었는데, 북한 회사와 현지 회사의 관계망이 구축되고 해당 지역의 노동 수요와 공급을 맞추는 시스템이 공식적·비공식적 차원에서 형성된 것이다. 북한 해외 파견 노동의 성별화는 지역과 산업에 따라 그 특징이 분명히 드러난다. 북한 남성 노동자들은 주로 러시아, 중동 및 유럽의 벌목 노동자와 건설 노동자로 편입되어 있다. 반면 여성 노동자들은 중국과 아시아의 봉제 공장 노동자나 북한 식당 종업원인 서비스업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이는 파견 국가 산업 부문의 노동 수요에 대해 북한 노동자들이 이주 노동자로서 저임금 노동력으로 공급되는 흡입(pull)- 배출(push) 요인에 따라 6 참고로, 당시 남한에서의 파견 노동은 1960 년대 독일로 간호사와 광부를 파견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독일로의 인력 파견의 배경에 있어서 당시 남한이 독일과 차관 협상을 하던 시기와 맞물려 있었기에 독일로의 간호사와 광부의 파견을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한 정부의 성공적 기획으로 해석하는 의견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2008 년‘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는 당시 독일로부터의 차관 원조와 독일로의 인력 파견이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남한의 간호사와 광부의 독일 파견에는 미국대외원조기관(USOM) 의 개입이 어느 정도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박재영,“파독 간호사광부의 독일정착과 삼각이민 연구,” 『다문화콘텐츠연구』, 제 15 집(2013), 344 쪽. 7 이용희, 앞의 글, 115 쪽. 8 북한이 당 자금을 위해 1 년에 1 만 명씩 해외에 파견하라는 방침에 따라, 27 개 국가로 인력 송출이 이뤄졌다는 분석도 있다. 통일연구원, 『북한인권백서 2016 』( 서울: 통일연구원, 2016). 7 구성된 것으로, 지역별로는 러시아와 중동, 유럽 일부 국가들에는 남성 노동력이, 중국, 동남아시아, 유럽 일부 국가들에는 여성 노동력이 차지하고 있다. 성별화된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에서 여성 노동력의 파견 규모와 특징은 아직 제대로 조사가 된 바 없어 앞으로 그 실태조사 및 연구가 이뤄져야 할 부분이다. 실제 북한 해외 파견 노동에서도 여성 노동력의 비중은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북한 해외 파견 노동이 활성화되는 과정에서도 젠더화된 전략이나 방식들이 형성되어 왔다. 북한의 젠더화된 파견 노동의 특성을 분석하는 작업은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 자체에 대한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젠더화된 파견 노동이 어떻게 북한 안팎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변화들을 가져왔는지를 면밀히 분석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현재 북한 해외 파견 노동의 공식 통계가 부재하지만 기존 연구들과 조사들을 바탕으로 그 규모를 산출해보면, 전체 12 만 명 내외 중에서 7 만 명 정도는 중국에 파견된 것으로 추정된다. 9 이렇게 중국이 전체 파견 노동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데에는 북- 중 국경지역에서 경제협력사업들이 진행되면서 동북 3 성 지역의‘봉제 공장’에 북한 여성 노동자들이 급격하게 증가한 데 따른다. 중국 내에 자국 노동자 임금이 상승하면서 동북 3 성의 인건비 부담이 커지자, 저임금 인력으로 북- 중 접경지역에 북한 노동자들을 공식 노동 뿐만 아니라 비공식 노동으로까지 유입하는 흐름 속에서 북한 노동자의 파견 노동도 더욱 활성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10 북한 해외 파견 노동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 파견 노동자들은 이처럼 주로 동북 3 성 지역의 제조업 분야가 핵심적이며, 여기에는 봉제업을 중심으로 북한 여성 노동자들이 상당 수 차지하고 있다. 이 동북 3 성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의류들은 미국의 글로벌 패션 브랜드와 한국 의류 업체들이 중국의 의류 제조 회사들에 몇 단계의 하청들을 거쳐서 생산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전세계 의류 시장이 국제 분업화되면서 생산 소비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의류 생산을 위한 봉제 공장이 저임금 노동력을 찾아 도달한 곳이 바로 이 중국에서 북한 여성 노동자들의 인력인 것이다. 11 이처럼 중국의 동북 3 성과 북중 접경지역의 봉제업을 필두로 9 이용희, 앞의 글, 117-118 쪽. 10 이승철·이용희·김부헌,“중국 대북 접경지역의 북한 노동력 진입 유형과 요인,” 『한국경제지리학회지』 제 22 권 제 4 호(2019), 438~457 쪽; 이종운·케빈 그레이,“북한 의류 생산네트워크와 UN 제재”, 『한국경제지리학회지』, 제 23 권 제 4 호(2020), 373~394 쪽. 11 김승재, 『세계의 옷공장, 북한』( 서울, 늘품플러스, 2020). 8 한 경공업 중심의 산업 구조에서 북한 여성 노동력이 활용되고 있는 현상은 북중 경계지역 안팎의 자본- 노동의 순환 구조와 더불어 젠더화된 생산/ 재생산 속성을 동시에 이해할 때 더욱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북한에서 해외 봉제공장으로 파견되는 여성 노동자들은 주로 20 대~30 대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들을 중에서 선발되고, 이들은 주로 평양 지역 출신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봉제공장 파견 노동자 규모가 증가하면서 기혼 여성들도 포함되는 경우도 있으며 평양 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파견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특히, 평양, 나진, 청진 등 북한 내에도 봉제공장 여성 노동자들이 생기면서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파견 노동도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12 다른 파견 노동들과 공통적으로 해외 봉제공장 노동자로 북한 당국에 의해 선발되기 위해서는‘출신’ 성분이 매우 좋아야 했다. 20~30 대 여성들 중에서 파견할 때 봉제 관련 기술이나 업무 능력이 그렇게 결정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파견이 결정된 이후 해외로 나가기 전에 봉제 기술을 배우고 나가는 과정을 거친다. 연구참여자 C 씨는 원래 요리사였지만 유럽 봉제공장으로 파견이 결정된 후에 나가기 전까지 회사가 봉제 기술 교육을 시켜줘서 배웠다고 했다. 그리고 파견된 지역의 현지 관리인에게는 봉제 관련 종사자였던 것처럼 보이도록 하였다고 한다. 또한, 북한 해외 파견의 젠더화된 노동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부문이 봉제공장과 함게 해외‘북한 식당’이다. 해외 북한 식당은 제 3 국에서의 도시나 관광지를 중심으로 하고 있고, 북한 음식을 판매하고 북한 공연을 하여 그 소비층도 현지 중산층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북한 밖의 제 3 국에서 운영되는 북한식당은 2000 년대 중국 전역과 아시아, 유럽 국가 등으로 영역 확장을 시도하고 증가세를 보였다. 그리고 2010 년대 중후반에는 12 개 국가의 130 여 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를 기준으로 했을 때 파견 접대원 수도 대략 2000 여 명으로 추정된다. 13 중국이 80% 이상 차지하였고, 러시아,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베트남, 말레이사아, 두바이 등 아시아 국가의 도심지나 관광지에서 운영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2012 년 네덜란드에 해당화관을 처음으로 열었지만 경영난으로 폐업된 상태이고, 그 이후 유럽 다른 국가들 중 몰타에서도 북한식당을 열었지만 경영난으로 1 년만에 폐업하였다. 14 해외 북한 식당의 외화 수익 규모는 정확하지 않지만 12 연구참여자 D 씨는 나진에서 상업대학을 다닐 당시 자신이 다니던 의례봉사학과와 달리 피복과의 학생들에게는 해외에 나가는 기회가 있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고 하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자신이 해외에 나갈 생각도 없었기에 평양에 와서야 해외의 식당이나 봉제공장으로 파견 노동을 나갈 기회가 있다는 것이 많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13 “북한 해외식당 운영 주요 현황,” 『연합뉴스』, 2017 년 9 월 28 일. 14 “서유럽 최초 北식당` 해당화' 홈피 개설,” 『연합뉴스』, 2012 년 2 월 13 일;" 네덜란드, 폐업한 北식당에 8 천만원 벌금 징수 ," 『연합뉴스』, 2016 년 10 월 12 일. 9 최소 1,000 만 달러에서 최대 1 억 달러까지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2000 년대부터 약 15 년 이상 세계 각지에 확장 운영되던 북한 식당들은 2017 년 UN 대북제재로 인해 철수 압력을 받고 있으며 이후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관광객이 끊기는 등 식당 운영의 위기를 맞았다. 이로 인해 해외 북한식당 중 일부는 폐점되었고 식당 노동자들의 비자와 거주 문제 등 신분은 더 불안정해졌으나, 중국과 러시아, 동남아시아 등에서 여전히 북한식당은 운영되고 있다. 이처럼 해외 도심지나 관광지에서 북한 식당이 형성되고 어느 정도 안착하던 시기에, 북한 내에서도 평양이나 나선 지역에서는 이전과 달리 요식업이나 관광업이 제한적으로나마 이전 시기와 달리 점점 발전되고 있었다. 15 2010 년 전후 고등교육 진학에 있어서도 상업대학에 대한 선호도 증가하기 시작했는데, 상업대학에서 요식업이나 관광산업에서의 관리와 경영 등을 배울 수 있었고 이 직종이 대학을 졸업한 후 일자리 전망이 좋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이 상업대학에 대한 선호는 여성들 중심으로 더욱 높아졌고, 실제 상업대학의 성별 분포에서도 다른 대학보다도 여성의 비율이 높다. 상업대학을 졸업하고 나와 전공에 맞게 외화식당에 취직해 봉사원, 요리사가 되거나 관광회사에 가서 안내원으로 일하게 되면 다른 직종에 비해서 월급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국가에 의해 배치되는 경우도 있지만 외화식당은 그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에게 고용되기도 했었기 때문에‘일한 만큼’ 수입을 가져가는 방식들도 있었다. 북한 내에서 식당, 관광업 등 상업 분야는 특정 지역으로 한정되고 산업 육성에 있어서 여전히 제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사회주의 체제 안에서 소위 자본을 가지고 있는 집단( 외국인, 돈주 등) 을 상대로 하거나 그들과 관계하면서 일을 하고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을 중심으로 해외 식당을 운영하여 부를 축적한‘돈주’ 16 들이 다시 당국의 지시 및 허락을 받아 북한 내 외화식당이나 상점 등을 동시에 운영하는 등 국내에서의 요식업과 관광업을 확장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던 것이다. 15 박정진,“국제 정치 경제적 관점에서 본 김정은 시대의 북한관광 변화 연구- 관광객 유치 해외 공급망과 외래관광객 유치 여행사 중심으로”, 『관광연구저널』, 제 32 권 제 6 호(2018), 77~90 쪽; 이혜정·강성현,“문헌으로 본 김정은 시대 북한의 관광산업 인식”, 『국가전략』, 제 26 권 3 호(2020), 151~178 쪽. 16 북한 김정은 체제 하에서‘돈주’라는 주체의 형성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대외무역 공간이 확대되면서 돈주가 ‘합법화’되고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점도 지적된다. 정영철은 이러한 돈주가 합법화되면서 국가가 재등장하고 있다고 보는데, 북한의 금융화 부문과 상업화( 유통, 대외무역 등) 부문에서 당- 국가 체제의 경제 관리와 통치에 시장- 친화적 정책을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해석한다. 정영철,“북한 경제의 변화- 시장, 돈주, 그리고 국가의 재등장”, 『역사비평』, 126 호(2019), 151~152 쪽; 김광진,“북한의 돈주와 평양 자본주의”, 『북한』 579 호(2020), 42~48 쪽. 10 이러한 요식업과 관광업에 종사하는 노동은 젠더화된 노동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영역으로 발전하고 있다. 식당 봉사원, 요리사, 관광 안내원 등은 주로 젊은 여성들을 배치하는 일자리로 편성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4 년제 대학 졸업( 상업대학 등) 여성들은 관리직 혹은 고수입이 보장되는 위치로 편입되며, 대졸이나 전문대학을 졸업한 여성들은 그 아래의 봉사원 등의 직종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북한 체제에서 여성노동력을 배치하고 활용해왔던 기존 방식에서 틈새와 균열을 내는 새로운 일자리라고 할 수 있으며, 앞으로 북한 체제의 산업 구조가 변화될 때 이에 따라 재구성될 젠더 구조와 양식을 조명할 때 중요하게 다뤄질 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17 북한 체제의 독특한 구조와 맥락에서 이러한 요식업, 관광업, 봉제업 등에서의 초국가적/ 국내적 젠더화된 노동이 얼마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더 두고 봐야 할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냉전 이후 북한에서의 젠더화된 노동 구조/ 형태 및 의미를 변화를 읽어낼 때 그리고 향후의 체제 및 산업 구성의 변화가 일어날 때, 이러한 요식업, 관광업을 중심으로 산업 부문은 북한 여성들의 경제 활동이 갖는 의미와 그들의 경제적 역량 변화를 살펴보는데 중요한 직종 및 영역이 될 것이다. 해외 북한식당의 파견 노동은 평양 출신 여성들이 종업원으로 선발되어 서비스업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해외 북한식당 여성 노동자의 선발 과정은 봉제공장 파견 여성 노동자들과 좀 다르다. 북한 식당 파견 여성 종업원들은 평양에서만 선발하고 있으며, 20 대 전후의 연령대의 소학교 졸업 혹은 전문학교 졸업한 자들 중 외모와 출신 성분을 중심으로 선출한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 북한 식당에서의 파견 노동은 평양을 중심으로 그 기회구조가 형성되었으며 20 대 여성들에게 해외에 나갈 수 있는 특별한 기회이자 하나의 선망의 일자리로 만들어졌다. 해외에서 일하는 북한 식당 여성 노동자들은 외모, 특기( 노래와 춤), 그리고 서비스업과 관련된 매너들을 갖춘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해외 식당에서 종사하고 돌아온 여성들은 경제적인 부를 축적해오면서 동시에 해외 문화를 경험하고 돌아와 평양에서 패션과 스타일 등 유행을 주도하는 집단으로, 이 일자리는 문화 자본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로도 인식되었다. 17 북한 체제에서 여성 노동력의 활용에 대하여 강채연은 북한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국가 가부장제의 긴장완화를 표면하고 대변하는 역할이었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의 노동력화가 이뤄진 측면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여성 노동력이 한편에서는 가족의 경제( 가사, 생계, 부역) 를 담당하면서도 국가에 의해 저비용으로 동원되고 동시에 시장경제에서도 중심노동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의 노동권과 인권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볼 점들을 제기한 바 있다. 강채연, “북한 여성노동력의 경제적 의미와 인권: 사회적 참여정책과 영향을 중심으로,” 『아시아여성연구』, 제 59 권 2 호(2020), 7~45 쪽. 11 Ⅳ. 해외 북한식당 형성과 평양 여성들의 인식 변화 해외 북한식당들은 현재 중국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중심 도시나 관광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 북한식당들은 국가의 허가를 받은 지배인( 회사 사장) 이 현지 대방의 협력하여 만든 것들이다. 그리고 북한식당에서는 지배인은 매출과 관련된 식당 운영을 맡고, 국가에서 파견된 보위지도원이 부지배인의 직함을 달고 식당 안팎의 관리 및 통제를 담당하고 있다. 현재 해외 북한 식당 구성을 살펴보면 지배인, 식당접대원, 카운터, 요리사가 핵심 인력이며 여기에 국가에서 파견된 보위지도원이 부지배인이 함께 상주하고 있다. 2000 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해외 북한식당이 운영되면서 자연히 그 핵심 노동력인 해외 북한식당‘접대원’을 뽑고 해외로 내보내는 패턴과 방식들이 형성되고, 이 직종에 대한 사람들의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의미들도 구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장소는 평양이 중심이 되었다. 평양에 가보니까 고등학교 졸업한 애들, 예쁘장하고 반반한 애들은 몽땅 해외식당 나가는 거야. 걔들은 보내는데 지방은 그게 없는 거야. 그래서 그때, 이거 완전히 역차별이구나. 지방에서 사는 것도 개떡 같은데, 지방 사람은 해외를 보낼 수 있는 경험이 없는 거야. … 첫 번째 조건이 평양시 거주자, 두 번째 나이 몇 살, 세 번째 인물, 네 번째 그 지배인 입맛에 따라 뽑는데 몽땅 평양시 거주자가 돼야 되는 거예요. 그럼 지방에 있는 사람 어떻게 할 건데? 그래서 라진은 그 수많은 여성들이 있었지만 해외를 나간다라는 생각조차 못했어요.( 인터뷰 D) D 씨는 2003 년 즈음 나진을 떠나 처음으로 평양에 가게 되었는데, 그 때 평양에 살고 있는 젊은 세대들이 접하고 있는 삶의 기회가 지방과 너무나도 다르다는 점을 여실히 느꼈다고 했다. 당시 D 씨는 나진에서 4 년제 상업대학을 졸업한 뒤 평양 상업대학에 편입을 하게 되었는데, 그녀가 평양과 지방의 차이로 느낀 것들 중 하나가‘해외를 나갈 수 있다는’ 것을‘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며, 그 기회를 잡아 실제로 해외에 다녀온 사람들을 평양에서는 종종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해외에 있는‘북한 식당’의 접대원으로 뽑혀서 나갈 수 있다는 것은 20 대 전후의 여성들 중에서도 ‘인물’이 출중하고 출신‘성분’도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기에, 평양의 젊은 세대 안에서 여러 방면에서 인정을 받은 것처럼 인식되었다. 평양에서 여성들이 해외 파견 노동자로 간다고 했을 때는 대체적으로 두 부류 중 하나였다. 첫째는 봉제공장에서 봉제공이었고, 둘째는 북한식당의 접대원이었다. 그 중에서도 북한식당 접대원으로 간다고 했을 때는‘외모’와‘키’, 그리고‘10 대 후반에서 20 대 초반’ 나이의‘미혼’이라는 특정한 조건이 충족되어야 했다. 봉제공장도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20 대에서 30 대 초반에 걸쳐 있었고 12 결혼하고 아이가 있는 기혼 여성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점에서 여성들이 해외 파견 북한식당 접대원으로 될 수 있는 기회는 더욱‘한정적’이었고, 뽑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까다로운’ 기준들을 통과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기도 하여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도 선호도가 높았다. 일단은 엄청 세련되긴 했었어요. 옷차림에서, 그리고 그분이 어떤 언행이나 이런 게 많이 세련됐는데, 해외에 대해서 많이 물어보니까 그냥 좋다는 이야기만 했고 큰 어떤 자세히 말을 많이 하진 않았어요. 근데 굉장히 여성스럽지. 우리 몽땅 다 여기 그러니까 국내파들은 왈가닥파. 다 이런데 해외물 먹고 오면 그 우아함이 있었어요. … 북한에 있던 사람들이 북한 안에서 우아해질 수가 없거든요. 우리가 본 게 전부가 그냥, 막 싸우고 야 그랬겠다 막 그러는데, 일단은 말 톤 자체가 사근사근하고 많이 평양시 애들보다도 훨씬 우아함이 있었어요. 그런 걸 보고 와서 남한의 어떤 흉내를 내는 것 같았어요.( 인터뷰 D) 특히, 2000 년대를 초반 해외 북한식당에서 일했던 여성들이 파견 기간‘3 년’을 마치고 18 다시 평양으로 돌아왔을 때, 이들의 모습이 바로 해외 북한식당 접대원이라는 자리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과 가치들을 가시적으로 증명하는 것이었다.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해외물’을 먹고 와서 그런지 트렌디한 패션과 우아한 매너를 갖게 된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해외에서 북한식당 접대원으로 일하고 돌아온 여성들은 20 대 초반 젊은 여성들이 북한 내에서 일하고 받는 보수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월급을 받고 이를 저축해‘목돈’을 벌어올 수 있는 기회로 여겨졌다. 중국에 식당으로 나가서. 중국말 유창하게 배워가지고 와서 통역 시험을 봐서 통역으로 채용이 돼서 나중에 북한에 오는 관광객들 상대로 이렇게 가이드 하는 친구들도 꽤 있거든요. 그거는 하나의 신분 상승이나 같아요. 또 한쪽으로는 또 외국이라는 걸 한번 경험해보고 싶다 이런 생각도 있었고. 그래서 그 세 가지 생각이 제일 컸던 것 같아요. 돈, 그다음에 외국어, 외국 경험.( 인터뷰 C) 이처럼 2000 년대부터 해외 북한식당 운영이 지속 확장되면서, 연쇄적으로 평양의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의 인식 변화도 나타났다. 해외 북한식당 접대원이라는 직종이 나타난 것이 그 이전 평양의‘20 대 여성’들에게 18 북한의 해외파견 노동은 모두‘3 년’을 기준으로 한다. 업종 특성 및 현지 사정에 따라 연장하는 사례들도 생기는데 그럴 경우 여권 유효기간인‘5 년’까지 일하기도 한다. 13 절대 주어지지 않았던, 즉 북한 밖으로 나가 새로운‘문화’를 경험해볼 수 있는 통로이자 자기 노동을 통해 ‘경제적’ 부를 마련하고 신분을 형성해갈 수 있는 기회로 형성된 것이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평양에서 소위 중산층에 해당하는 20 대 여성들 사이에서 많이 선발되었다.‘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3 년제 전문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대상이었고, 외모와 특기, 출신 성분 등에서 지배인의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4 년제 대학 졸업자들은 보통 제외되거나 선호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로는 국가가 키운 고급인재이므로 이들은 국내 간부급 인력이므로 해외로 돌리지 않는다는 견해와 4 년제를 졸업하면 나이가 상대적으로 많아져서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견해가 있다. 그리고 집안이 너무 좋아도 해외에 식당 접대원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인식도 있었는데, 북한식당 접대원들에 대한 보수적인 시각들, 즉 해외에서 서빙과 공연을 하면서 돈을 벌어오는 것을 정숙하지 못한 일로 여겼던 초창기의 분위기와도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3 년 정도 근무를 하고 돌아오는 사례가 축적되고 관련 이야기들이 많아지면서 초기의 부정적인 시각은 많이 완화되었다. 이제는 평양의 젊은 여성들에게는 해외로 나간다는 것이 북한 사회에서 규정해왔던 기존의 삶의 방식과 틀을 넘어서, 제한적으로나마 자신의 미래를 문화적이고 경제적으로 기획할 수 있는 특별한 일자리가 된 것이다. 해외 북한식당 접대원은 지배인이 선발한다. 공식적으로 공고가 나는 경우는 없고, 지배인이 주변 지인들의 추천 및 부탁을 받아서 해당 인원을 선발한다. 2000 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지배인에게 뇌물을 주고 뽑히려는 사람들도 생겨날 정도로 선호가 높아졌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해외 북한식당 접대원은 기본적으로‘외모’와‘키’가 중요한 기준이었기 때문에, 뇌물만으로 뽑히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었다. 해외식당 접대원으로서 그 기준과 역량을 일차적으로 나이, 외모, 키 등에 둠으로써 젠더화된 서비스 업종에 전형적 방식인‘성애화’된‘아름다움’이‘경쟁력’을 갖는 것으로 상품화되는 것이다. 정말 북한 식당들이 막 엄청 많이 나와 있잖아요. 근데 정말 지나가는 여자 이렇게 확 끌어당겨가지고 나가는 그런 데도 있어요. 근데 그런 데 나가면( 캐스팅?) 그냥 길거리 캐스팅 막 해가지고 이렇게 가는 데가 있거든요.( 인터뷰 A) 저도 거기 거기를, 우리 어느 식당에서 해외 내보낸다 공개하는 게 아니라, 그 뭐지 길거리 캐스팅 비슷하게 다 다녀요. 오늘 해외 나가는 식당 있는데 한번 면접보지 않겠냐 해서 그 기회가 와서 면접보고 해외 나가고.( 인터뷰 B) 14 2010 년 이후부터 북한식당 여접대원이 되려고 경쟁이 치열해지고 해외 북한 식당 운영도 잘 유지되면서, 비교적 큰 회사들의 경우 파견 인력을‘미리’ 확보해 체계적으로 훈련하고자 하였다. 이 회사들은 전문적으로 서빙, 공연, 외국어교육 등을 가르치는 학원과 같은 양성소를 만들어 1-2 년 동안 교육시킨 뒤, 양성소 출신 중에서 인력들을 선발하였다. 양성소 출신자들 사이에서는 경쟁이 매우 치열하여 교육을 다 받고도 인력으로 선발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미리 해외 식당 접대원을 구하는 좀 작은 회사들을 알아보고 있다가, 그곳에서 선발되어 해외로 나가기도 하였다. 지배인들에 의해 식당 접대원으로 여성들은 그 다음부터는 국가로부터 해외에 나가도 문제가 없다는 검증을 받는‘간부사업’의 절차를 거친다. 이 절차는 행정적으로 세 부분으로 나눠지는데, 신체검사, 신원조회, 심층면접이다. 이 단게에서는 지배인도 힘을 쓸 수 없고 각자가 문제없이 통과해야만 한다. 특히 조금이라도 결격 사유가 될 소지가 있을 경우에는 탈락하지 않도록 미리 손을 쓰거나 뇌물을 더 주게 된다. 신체검사 할 때도 제가 요리사를 하다가 얻었던 병이 있어서, 혹시라도 그게 더 흔적이 나올까 해가지고, 처음 초음파하고 엑스레이 찍고 막 이러는데 그냥 돈을 좀 준 거죠. 의사들한테. … 북한은 되게 구식이에요. 깜깜한 데 들어와서 보거든요 엑스레이를. 그래서 이걸 이제 늑막염 앓고 난 흔적인데, 마치 무슨 결햇 흔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대요. 그래서 혹시나 해가지고 돈 주고.( 인터뷰 C) C 씨처럼 특별히 검증 단계에서 특별한 사유가 없다 하더라도 해당 업무를 담당한 관료들에게 암묵적으로 돈이나 티켓 등을 사서 주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가령, 신원조회 시에 예전 다니던 학교 선생님들에게 보증을 받아야 되는데 함께 다니는 간부 과장이“다니는 코스 차를 타고 다니니까 휘발유를 대라”고 하여 휘발유 표를 사서 준다거나, 외무성에 있는 담당자로부터는 손전화를 많이 쓴다고 손전화 카드를 사서 바치라고 하는 식이 비일비재하다. 면접도 한 번이 아니라 구역당. 시당 등 각각 여러 번 면접을 거쳐야 되는데 그 때마다 일정 정도의 뇌물을 줘야 안정적으로 늦지 않게 검증 절차를 마칠 수 있다. 그리고 각 회사에서는 파견이 확정된 접대원들에게 중국어, 영어 등 외국어 교육을 시키고 서빙과 공연을 위한 노래와 악기 등 특기 교육을 시킨다. 회사에서 시키는 교육은 파견 지역의 식당 특징에 따라서 강조점이 조금씩 다르다. 중국의 북한식당의 경우 손님들 중 현지 중국인들도 많기 때문에 중국어로 손님과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중국어 교육을 시킨다. 그리고 공연을 위해서는‘악기’를 할 수 있는 인력이 꼭 필요하므로 각자 노래 말고도 악기를 하나씩 특기로 다룰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 15 간부사업을 마치고 나면, 국가가 해외 파견 노동자들 모두에게 필수로 시키는 사상 교육을 시킨다. 가령 해외 파견이 결정된 사람들은 출국 전에 모두‘반간첩투쟁관’에 가서 교육을 받는다. 이곳에서는 해외에서 ‘이탈’하거나 남조선과 접촉하는( 혹은 당하는) 경우들 등을 중심으로 경각심을 넘어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 Ⅴ. 해외 북한식당의 노동과 일상에서의 규율 해외 북한식당의 현황에 대한 정확한 통계 자료는 없다. 해외 북한 식당의 시초를 살펴보면 1997 년 중국 북경에 개점한‘해당화관’이 운영에 성공하였고, 2000 년 이후 중국 전역에 식당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으로 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20 당시 해당화관에서 요리사로 일하다가 2000 년대 초에는 독립해 북경에 북한식당을 차렸던 지배인의 아들이었던 E 의 진술에 따르면, 해당화관은 초반에는 매출이 좋지 않아 폐점 위기까지 갔으나, 북한 식당에서 북한‘음식’ 제공 뿐만 아니라‘공연’을 하기 시작하면서 매출이 좋아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가 뭐 딴따라냐. 그리고 우리 요리하는 사람들이고 좀 그런 자부심 같은 게 있어요. 북한에도 요리하는 사람들은 어쨌든,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인데 왜 이걸 우리가 나와서 공연도 하고 웃음도 팔고 이래야 되냐 하고 했는데 유 OO 사장이, 8 개월 뒤면 철수하는 마당에 우리도 어차피 쪽박 차고 들어가면 다 빚더미 위에 올라앉게 될 텐데 뭘 가리겠냐, 여기서 될 수 있는 건 해봐야지라고 해서 했는데. 긴가민가 하는 사람들이 이제 그다음에 이제 막 사람들이 꾹꾹 넘치는 거 보면서, 이게 되네 이게 먹히네, 이래가지고 생각이 다 바뀌어서.( 인터뷰 E) E 의 진술에 따르면, 현재 북한 식당의 독특한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공연은 식당 운영 처음부터 했던 것이 아니라 해당화관 운영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고안한 방법으로 시도했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음식에 대한 ‘자부심’,‘딴따라’가 아니냐는 등을 이유로 주변에서는 식당에서 공연하는 걸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19 https://www.youtube.com/watch?v=YCclgGPaziM 20 “북 1 호 프랜차이즈' 해당화', 성공비결은' 女봉사원'?” 『중앙일보』, 2016 년 2 월 29 일. 16 그러나 공연을 하면서 손님이 증가하고 매출이 상승하는 등 성공 요인이 되었고, 이후 모든 해외 북한식당에서 접대원들이 서빙하는 음식과 공연은 식당 운영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평양을 출발했을 때의 막연한 기대와는 달리, 북한식당 접대원들은 해외 어느 지역으로 가든 공통적으로 현지에서‘고된 노동’과 엄격한‘단체 생활’을 맞닥뜨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평양을 뜨기 전 들었던 것보다 훨씬 적게 떨어지는‘월급’을 손에 받고 힘들었다고 기억한다. A 씨는“가자마자 3 일만에”나 집에 가고 싶다“ 이 생각을 했어요”라고 하면서, 평양에서 고려항공 비행기를 타면서 가졌던 설렘과 기대는 금방 접고 현지 식당에서의 녹록치 않은 현실에 바로 적응해야 했다고 했다. 2010 년 이후 해외 북한식당 여성 노동자들의 월급은 대체적으로 150 달러 내외인 것으로 보인다. 캄보디아에서 일했던 A 씨는 한달 월급으로 150 불을 받았다고 하였으며, 중국에서 일했던 B 씨는 한달 월급이 1,000 위안이었다고 하였다. 다른 업종이긴 하지만 유럽에서 봉제공장 노동자를 했던 C 씨는 가기 전 450 유로는 받는다고 들었는데, 실제 월급은 130-140 유로를 받았다고 했다. 지역 특성과 식당 매출액, 지배인의 재량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들은 한국 돈으로 환산했을 때 전반적으로 15 만원~20 만원 사이 금액의 월급을 받는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보통 해외 파견 노동은 공통적으로 그 수입의 상당 부분 국가의 충성자금으로 바쳐야 하고 그 나머지 지배인( 회사 사장) 이 가져가고 나면, 노동자들에게 떨어지는 돈은 10%~20% 정도라고 논의되고 있다. 그런데 북한식당에서는 이 월급도 매달 꼬박꼬박 현금으로 주기 보다는 생활비만 조금 타서 쓰고 나머지는 ‘장부’에 달아놓는다. A 와 B 모두 생활비만 조금 받고 나머지는 다 장부에 기재했다고 했다. 장부에 적힌 돈은 나중에 평양에 돌아가게 될 때 한꺼번에 받거나, 중간에 필요한 경우 지배인의 허락을 맡아 평양에 계신 부모님에게 송금을 하기도 한다. 150 불을 그냥 장부에다만 적어놓는 거예요. 나한테“한 달 월급이야” 이렇게 안 줘요. 3 년 지나면 장부에 펼쳐 보려고 찍힌 그거. 이제 한 달에 20 불을 지불해 주거든요. 그러니까 그 150 불에서 20 불 떼고 주면, 130 불이 항상 이제 한 달마다. …(그러면 중간에 부모님한테 막 돈 붙여주고 그런) 그건 못해요. 그건 내 마음대로 못 해요. 이제 지배인의 허락을, 그러니까 사장님의 허락을 받아가지고“돈을 보내고 싶습니다”라고 얘기했는데,“집에는 안 돼 못 보내” 이러면 못 보내는 거예요. 내 돈인데.( 그럼 선생님은 못 보내신 거예요?) 저 중간에 제가 4,000 불을 보냈던 적이 있어요. 그리고 4,000 불은 내가 못 가져왔죠.( 인터뷰 A) 17 월급을 매달 받지 못하고‘장부’에 적어두는 것은 여러 방면에서‘통제’의 효과를 갖는다. 우선 목돈이 장부에 매인 여성 노동자들이 식당을 이탈할 수 없도록 하는 기본적 수단이 된다. 뿐만 아니라,‘장부’를 활용해서 그녀들의 임금을 그들에게 주지 않는 수법은 현지에서 생활할 때 그녀들이 원하는 소비를 할 수 없도록 자율성을 제한하는 효과를 낳았다. 북한식당 접대원들은 평양에서 기대했던 임금 수준보다 적은 금액인 150 불을 받지만 그마저도 그 돈을 실제로 다 받지 못하고‘현금’은 20-30 불만 손에 쥔다. 북한식당 여성 노동자들은 이‘최소한’의 생활비( 혹은 용돈이라고 불리기도 함) 안에서 일주일에 한번 외출할 때 화장품, 의류, 간식거리 등을 소비한다. 이 돈으로는 마음껏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없기 때문에, 정말 사고 싶은 물건이 있을 때는 20-30 불 안에서도 일부 아끼고 모았다가 돈이 모여지면 산다. 자연히 그녀들은 현지에서 자신이 번 돈이 있음에도 충분히 원하는 만큼‘소비’를 할 수가 없다. 자신이 노동해서 번 댓가임에도 그 임금에 대해 자율성이나 결정권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에, 현지에서 충분히 소비를 통해 사고 싶었던 물품을 사거나 자기실현을 위한 경제적 역량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 북한식당 여성 노동자들은 일주일에 하루만 쉬고 나머지는 매일 12 시간 내외 식당에서 일한다. 그녀들은 식당 청소에서부터 서빙과 공연을 모두 담당한다. 보통 아침 9 시 즈음 출근하여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점심 공연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함), 이후 저녁 식사를 서빙하고 보통 8 시에 공연을 한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도 12 시나 새벽 1 시에 숙소로 복귀할 때도 많은데 저녁 식사 후에‘밤에 술 먹는 손님까지 받으면’ 그 손님들이 다 가고 난 뒤에야 퇴근할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식당 업무가 다 끝나고 난 뒤에 새로운 공연을 준비하거나 연습하느라 새벽 시간까지 식당에 있다가 숙소로 돌아오기도 한다. 해외 북한식당에서 위와 같이 긴 노동 시간과 노동 강도 외에도 그들이 힘들어하는 요소는 기본적으로‘단체 생활’을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단체 생활은‘보위지도원’의 관리 하에 놓여 있다. 식당과 거의 가까운 곳에 위치한‘숙소’에 그들은 함께 기거한다. 식당과 숙소 외의 다른 장소는 혼자 마음대로 갈 수 없다. A 씨가 일한 식당은 접대원들이 단체 숙소가 식당 2 층에 있었고, 식당 주변에는 담장과 함께 철책이 둘러싸여 있었다. 그녀는 식당에서도“이 식당에 이제 여기 이게 레드 라인이 있어요. 안에서 딱 그 이제 중문이 있거든요. 그 중문 나가면 탈북이라고 봐요”라고 하였다. 이처럼 북한식당 접대원들은 식당과 숙소를 제외한 다른 장소로 혼자 임의로 나갈 수 없고, 이는‘북한을 벗어나는’ 행위이자‘이탈자’가 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18 일주일에 하루 쉬는 날에도 그들은 혼자서 어디도 나갈 수 없다. 보통 쉬는 날에 하는‘외출’은 보위지도원이 함께 나가거나 2-4 인 1 조로 허락을 받아 다녀와야 하고 어디를 다녀왔는지 보고해야 한다. 외출 시간에 근처 지역 시장이나 쇼핑몰에서 화장품이나 의류 등을 사고 다시 숙소로 복귀한다. 한 달에 한 번 단체로 나가요, 하루.( 감시라고 해야 될) 아 따라나가죠, 보위부가. 딱 코스가 정해졌어요. 식당에서 나가서, XX 라는 마트를 갖다가, 거기서 5 층에 있는 거기서 스키 샤브샤브를 하나 먹고, 그다음 내려와서 그 무슨 XX 라고 하는 시장이 있는데 그 시장에 가가지고 거기서 시장 돌아가다가, 들어오는 거. 그거 다에요.( 인터뷰 A) 또한, 기본적으로 1 주일에 한 번씩 생활총화를 하였고 가끔씩“지배인이 한 달에 한번 회의를 갔다오면 무슨 내용 코치를 받았고 요즘 정세가 이러니까 조심해야 된다는 등“ 지시를 받았다. 생활총화는 그녀들에게 노동과 휴식시간 사이에 시간을 내서 해야 하는 번거롭기도 한 의례였고, 식당에 손님이 너무 많은 시기에는 간헐적으로 생활총화를 안하고 넘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생활총화는 보위지도원의 관리 하에 식당 접대원들로 하여금 북한에서 해왔던 일상적 의례를 실천하도록 하면서, 북한 특유의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문화가 해외에서도 재생산되도록 하는 규율적 효과를 갖고 있었다. 생활총화도 하죠. 그 짬내서 밥 먹는 시간 줄여가지고( 그건 일주일에 한 번 하던거) 네 토요일마다 호상비판 하죠. 그러니까 뭐 동무는 왜 남조선 뭐 거기 앞에 가서 뭐 이딴 말을 합니까? 막 이 그런 시시껄렁한 걸로 막 넘어가요 일단은. 일단 이래야되니까. 그리고 정말 바쁠 때는 생활 총화 패스.( 인터뷰 A) 북한식당에서 기본적으로 하고 있는‘단체생활’이란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 통제만을 위한 게 아니었다. 이 단체생활은 해외에서 북한 체제의 일상적 규율이 작동시켜 그들만의‘안전한’ 영역으로 식당과 숙소를 마치 제 3 국 내에 영토화된 그들만의‘북한’처럼 구성하고, 그 외의 다른 장소들을 자율적으로 갈 수 없도록 하는 철저한 사상 통제와‘이동 통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마치 해외에서 생활하면서도‘작은 북한’과 같을 뿐만 아니라 어찌보면‘평양’에서보다도 더 자유롭게 소비를 하거나 시내를 돌아다닐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제 3 국’의 도시에서 머무르며 겪는 환경이 전반적으로 평양에서보다 더 낫다고 긍정하기도 한다. 19 그래도 자유였었고 뭐 불 놓고(?) 따뜻한 물 24 시간 계속 나오고 그런 거 생활을 했었잖아요. 그러다가( 평양) 갔는데 너무 전기도 안 오지, 집에 갔는데 집 천장이 너무 낮아 보이지, 벽지도 하얀데 누래 보이지, 모든 게 다 시골 느낌 나고 이런 거 있었거든요. … 그래서 그때도 애들도 그런 거 있잖아요. 이제 다 들어가면 진짜 찬물에 샤워를 어떻게 하냐 물은 어떻게 쓰냐, 이런 얘기 하는데, 야 한 달만 있으면 다 적응 돼.( 인터뷰 B)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들에서 경험하는 기본적인 도시 환경이나 인프라, 가령 전기나 물 공급 등 평양에서보다 더 좋은 환경이다. B 씨는 처음에 중국 북한식당에서 거주 관련 비자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아 1 년도 안되어서 돌아왔던 적이 있다. 그녀는 해외에서 당연하게 생각하던 인프라나 도시 분위기에 익숙해져서, 막상 평양에 있을 때보다 해외에서는 훨씬‘자유롭다’고 느꼈던 것이다. 이처럼 평양에서 해외로 파견되어 나온 북한식당 여성 노동자들은 대부분 3 년 그리고 연장될 경우엔 4~5 년 더 일하고 평양에 다시 돌아간다. 돌아간다는 것은 해외 경험은 끝이지만 미래 평양에서는 다시‘시작’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현재의 경험이 미래 평양에서 해외에 나가기 전과 다른 사회적 위치를 만들어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제 식당에서 들어가면 저는, 이제 그 엄마가 이제 얘기를 했던 게 뭐냐면, 어느, 북한에도 이제 그런 식당이 요식업들이 되게 많이 생겼어요. 이런 식당들 그런데 그 식당들에서 이제 해외북한 식당 출신들을 데려와서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매니저 같은 역할을 하면서 이제 애들 키워내는, 식당 공연 기획 짜고 그런 데가 많이 생겼다고. 그런 데에서 이제 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다고 이제 얘기를 해가지고 저 같은 경우는 그런 데 이제 갈 거다라고 생각을 했었죠.( 인터뷰 A) 해외 북한식당에서 북한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 시간과 여가 시간 모두에서 신체의 자유( 이동의 자유) 에서부터 경제적 자율성( 임금 관리, 소비 등) 의 제약을 느끼면서도, 3 년이라는 정해진 기간( 연장해도 5 년을 넘지 않는) 이라는‘한정된’ 시간성을 상기시키면서 미래에 북한에서 돌아가서 얻을 가치를 계속 상기시키며 현재의 노동과 일상의 힘듦도 버텨낸다. 서빙을 할 때 북한식당 접대원들은 손님들로 온 남한 사람들에 대해서 양가적인 감정을 갖는다. 다른 나라 손님들과 달리 공연을 보면서 한‘민족’임을 서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오히려 북한에 대해서 무례하게 질문하는 사람들이 남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가장 큰 불편감을 느낀다. 20 우리 나라를 물어봐요.“북한 사람들 다 키 작지 않나?” 다 큽니다 다 뻥치죠. 아예 다 크다고 막.“살기 어렵지 않나?” 아니다 안그렇다, 우리도 다 잘 산다, 거짓말 하죠. 우리도 자존심이 상하니까. 우리는 그렇게 얕보지? 왜 이렇게 뭐라고 하지? 키가 작다고 하지? ( 한국 사람들이 주로 물어보는 건가요?) 한국 사람들이 많이 물어봐요. XXX 아니에요? 이런 거 물어보면 그런 거 말해줄 수 없다 얘기 하고. 중국 사람들은 그런 거에 물어보지 않고 관심도 없어요. 조선족은 오히려 좀 찬양하는 쪽? 김일성이 있을 때 정말 잘 했다. 정말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다. 오히려 이렇게 하는 쪽이고.( 인터뷰 B) 현지에 나와 있는 남한 출신 교민들은 가장 편하게 대화할 수 있고 친밀감을 쌓을 수 있는 단골 손님이지만, 바로 이 현지 남한 출신 교민들이 자신의 신변을 가장 위협할 수 있고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는 대상자들이라고 사상교육 때 가장 강조된다. 보위지도원들도 자주 오는 남한 사람들이‘매출을 올려주는’ 단골 손님이지만 동시에‘왜 이렇게 자주 오는지’ 체크하려 하며, 서빙을 담당한 접대원들에게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물어보고 확인한다. 중국에 있는 식당들 중에는 규모가 큰 경우 홀 뿐만 아니라 룸도 있다. 이 룸에는 보통 서빙하는 접대원이 한 명씩 배치된다. 중국인들을 서빙할 때는 혼자 서빙하는 것이 허용되지만, 만약 룸에 온 사람들이 남한 출신자들이면, 절대로 혼자 서빙을 해서는 안되며 2 명 이상 함께 서빙해야 하는 규칙이 있다. 식당에서의‘팁’ 문화는 북한 내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초반에는 북한식당 내에서 보위지도원, 지배인, 접대원 간의 갈등의 요소가 되기도 하였다. 이후 팁 문화에 새롭게 적응하여, 접대원이 직접 돈을 받는 대신 카운터에서‘꽃다발’을 사서 주도록 하는 방식을 개발하였으며, 이 꽃다발 또한 북한식당의 특징이 되었다. B 씨는 식당 접대원들이 팁을 받을 경우에는 보위지도원( 부지배인) 에게 다 바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했다. 룸에서 개별적으로 서빙할 때는 팁을 받고도 몰래 숨길 수 있지만, 간혹 걸릴 경우 곤란한 상황이 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팁은 카운터에 모두 주고 모은다고 했다. 그렇다고 보위지도원이 팁을 재량으로 사용할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며, 보위지도원과 지배인이 상의해서 식당 접대원들에게 일부 나눠주거나 다른 공금으로 쓸 용처에 사용한다고 했다. E 씨는 자신의 아버지가 지배인일 때 보위지도원이 접대원이 받은 팁에 대해서 문제삼아 갈등을 빚었던 사례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보통 지배인은 총 매출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매출이 큰 식당에서는 팁이 상대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부 지배인은 접대원들이 팁을 일부 가져가는 것이 오히려 더 열심히 일하는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고 큰 문제로 여기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21 보위지도원이 가끔씩 이제, 내가 한국 사람한테 팁 받는 거 봤다. 왜 보고 안 하냐, 뭐 이런 식으로 그러면. 너 혹시 그거 정보 비용 아니냐, 그가 뭘 정보를 줘가지고 또 비용 받은 거 아니냐라는 식으로 트집을 잡는데, 이런 일이 실제 있었거든요. 저도 들으면서 어이가 없었던 게 사상투쟁회를 하는데 그 안에서, 저도 듣다가 그냥, 아니 서빙하시는 분이 정보를 알면 얼마나 알겠냐 그냥 하나의 일 잘했다고 주는 성과급 정도로 봐야지 그걸 하나하나 트집 잡기 시작하면 아무도 레스토랑 운영 못한다.( 인터뷰 E) 특히 팁은 공연을 하고 난 뒤에 손님들이 인상깊었던 접대원에게 주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해외 북한식당들이 도심지나 관광지에 있고 대부분 손님들이‘관광하러 온’ 사람들로, 이들은 제 3 국에 여행이나 출장을 와서 기분을 전환하거나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싶어하고, 일상적 공간이 아닌 곳에서 이를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출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공연을 하기 전후 팁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문제가 되지 않을’ 방법을 고안해낸 것이 바로 팁을 주고 싶은 접대원에게‘꽃다발’을 사서 주는 것이다. 해외 북한식당의 가장 독특한 특징 중 하나가 식당 접대원들이 하는‘공연’이다. 공통적으로 공연은 매일 저녁 8 시에 하는데 공연시간은 약 40 분 내외 한다. 점심에도 손님이 많은 식당의 경우 점심에도 조금 짧게 공연을 하기도 한다. 공연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해외에 나오기 전 평양에서부터 그녀들은 노래, 춤, 악기 연주 등에서 자신만의 특기를 선택해 연습한다. A 씨는 식당에 나오기 전 대외봉사일꾼양성소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노래를 주특기로 하면서도 악기를 하나 더 해야 한다고 해서 베이스 기타를 배웠다. 평양에서는 전기가 끊길 때 전자악기 연습을 못하므로 전기가 들어올 때에만 연습을 해야 했었다. B 씨는 무용을 특기로 하였고 중국 북한식당에서도 무용조에 속해 공연을 했다. 북한식당 접대원들의 공연은 이들이 북한에서 전문적인 훈련을 예술단이 아니기 때문에 공연의 수준이 높지는 않다. 그리고 북한식당 내에서의 공연은 북한 특유의‘사상적’인 요소들도 포함되어 있지만 주로 관광산업의 기본 요소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상우, 2020). 북한에서 노래, 무용 뿐만 아니라 남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남한 노래나 통일 염원 노래도 포함하고 있으며, 해외라는 공간의 특성상 팝 문화나 현지 로컬의 문화가 반영된 무대가 꾸며질 때도 있다. 공연 프로그램은 대체적으로‘반갑습니다’에서 시작해서‘다시 만납시다’로 끝나고, 그 사이에 북한 노래, 남한 노래, 전통 무용, 현대 무용, 악기 연주 등 해당 식당 접대원들의 특기들을 중심으로 구성뙨다. 이들은‘북한’의 전통적 혹은 사상적 의미를 담은 예술이라기 보다는,‘민족’ 코드를 바탕으로 남한 사람들에게‘동일하다’ 정서를 유발할 수 있는 방식으로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중국 노래나 팝송을 부르면서, 남한도 북한도 아닌 22 제 3 국의 글로벌 도시 혹은 관광지라는 특성에 걸맞는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 모든 혼용된 것들을 마치 손님들은 북한 식당 안에서‘북한적인 것’이 재현되는 것이라 받아들이고 스스로도 지각하지 못하는 권력화된 시선으로 북한적인 것을 접하고 소비한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바로 해외에서 소비자들의 시선과 입맛에 맞게 조정되고 재창조된 새로운 문화적 산물이다. 북한식당에서 서빙 뿐만 아니라 공연도 함께 하는 것은 접대원들에게는 노동 강도를 높이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접대원들에게 있어서‘공연을 한다’는 것은 식당에서‘노동’ 행위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북한식당이라는 집단적 공간에서 나의 가치를‘인정’받을 수 있는 행위였다. 식당에 나가서 공연에 올라가냐 못 올라가냐가 또 그게 관건이에요. 넘어야 되는 문제거든요. 내가 실력이 없어서 못 끼면 난 평생 공연도 한 번 못 해보구. 뒷선에서 맨날 미차 끌고. 그래서 그 공연에 대한 이 신경전이 또 불꽃 튀어요. 내가 신참이 오잖아요. 그러면 누구 고참을 하나 내려서 그 자리에서 나로 뻗어 나와야 되거든요. 근데 이 고참보다 내가 뭔가 더 잘하는 매력이 있어야 돼요. …공연 올라가야만, 인정을 받는 거예요.( 그렇지만 일이 더 많아지는 건 아니에요?) 일이 더 많아지죠. 많아지는데 그거 고통을 인내, 감내하고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내 명예를 위해서.( 인터뷰 A) 동료들 사이에서도 공연을 잘하면 좀 더 두드러진 자기 위치를 점할 수 있었기에 오히려‘경쟁적’으로 공연을 하려고 하기도 했다. A 씨는 자신이 공연을 하는 것으로 받는 인정,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명예’를 위한 것이라고 의미화하고 있다. 접대원들은‘공연’을 통해서 얻는 가치를 통제된 집단생활 안에서 제한적으로나마 자기룰‘개성화’하고 식당을 대표할 수 있다는 느낌에서 비롯되는‘명예’로 의미화함으로써 이를 동료 및 손님들로부터 얻는‘인정’으로서 받아들였다. 공연조를 다 하고 싶어 했어요.( 돈을 버니까?) 공연조를 더 챙겨주는 건 없지만, 그래도 손님들이 자기가 담당했던 사람 공연도 하네? 그럼 좀 인기도 많아지고 그 노래도 부르고 하면 사람들이 팁도 더주기도 하고 하니까, 공연을 다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끼리도, 으쌰으쌰가 있어요. 새로운 작품을 하나 만들까? 너무 우리도 하기 지루하잖아. 우리 작품 하나 또 만들자 해가지고 우리끼리 만들어가지고 하기도 하고. … 우리는 솔직히 좀, 북한 노래도 많이 부르고 체제 선전에서 나온 거, 북한 입장에서는 체제선전도 좀 해라 그러는 거죠.( 체제 선전하라는 그런 게 있어요?) 하라는 것보다, 우리나라가 좋다 제일 좋다. 그런 노래를 부르죠.( 인터뷰 B) 23 공연을 하고 꽃다발을 더 많이 받는다고 해서 월급을 동료들보다 더 받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식당에 따라서 팁이나 꽃다발을 받은 접대원들에게 월급을 조금 더 챙겨주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공연 여부와 인기 자체를 가지고 접대원들 간 차등을 주거나 차별하는 분위기는 지양하는 편이었다. 식당에서 공연이란 기본적으로 손님들을 즐겁게 하는 엔터테인먼트의 요소가 있다. 이에 더하여 초국적 공간에 있는 북한식당에서 접대원들에게 공연의 의미는 북한의 정체성을 예술적으로 구성하여 전달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부여하는 인식적 틀이 있었기에, 그 안에서 북한적인 공연을 구성해야 된다는 의미 부여도 있었다. 이들에게 식당에서 공연은 고된 노동 환경 속에서 자기의 가치를 확인하는 하나의 출구이기도 하였으며, 내 일에 대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창조적인 활동이기도 하였다. Ⅵ. 결론 및 함의 이 글은 해외에서 운영되고 있는 북한식당의 역사적 형성 과정과 이를 둘러싸고 북한에서 나타나고 있는 변화, 평양 출신 20 대 여성들 중 해외 북한식당으로 파견된 접대원들이 겪은 노동과 일상 속 경험들을 해석하였다. 해외 북한식당 자체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었던 상황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 해외 북한식당의 형성 과정 및 이와 연관된 북한 안팎의 사회문화적 변화들을 정리한 부분은 앞으로 해외 북한식당 연구가 다각도로 수행되기 위한 기초 작업이기도 하였다. 또한, 이 글에서는 해외 북한식당과 관련된 정보나 담론들이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은 채 그들을 외부에서 대상화하는 방식으로 의미들을 구성해 왔다는 점을 비판하고, 해외 북한식당 여성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수행해 이들의 경험과 내러티브를 담아 그들의 행위성을 비추고 다양한 의미들을 해석하고자 했다. 연구 결과, 첫째 해외 북한식당이 형성되면서 이곳에서 중요 행위자가 되었던 평양의 젊은 여성들에게 이 자리가 갖는 의미, 이를 둘러싼 그들의 경제적이고 문화적 기대와 실질적( 여전히 제한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새롭게 열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북한식당 여성 노동자가 된다는 것에 대한 의미는 북한 안에서는 얻을 수 없는 돈, 해외 문화 경험( 외국어와 외국 상품들) 등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자리로서 해석되었다. 특히 평양의 젊은 세대들은 이미 남한 드라마나 해외 문화에 대해 더욱 눈을 뜨면서, 해외의 문화를 직접 접하고 평양에서 새로운 문화를 선점할 수 있는 집단들 중 한 집단이 해외 식당 경험을 하고 온 여성 노동자들이라고 인식하였다. 24 둘째, 해외 북한식당 현지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과 일상생활 양 측면에서 함께 살펴보면, 그들은 북한에서와 유사한 규율 양식에 놓여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강력한 이동통제와 노동통제 하에 놓였다. 그들은 일터와 숙소 모두 집단생활을 하면서 해외에서 북한체제의 특성이 재생산되는 상황에 놓이지만 해외라는 열린 공간에서 제한적으로나마 주어지는 새로운 문화적 변화도 접하는 이중적인 경험을 하였다. 즉, 북한이 아닌 제 3 국에서 평양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자유로운 분위기와 새로운 환경 속에서도 집단 생활 속에서 고된 노동을 해야 하는 일상을 현재적으로 겪어내면서, 미래에 평양으로 돌아갔을 때 자신이 갖게 될 경제적 보상과 문화적 우위를 저울질하며 나름의 적응 전략들을 모색한다. 앞으로 북한의 해외파견노동을 젠더 관점에서 해석하는 연구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개념화나 이론적 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경험 연구들이 다방면에서 많이 생산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가령, 이 글에서는 해외 북한식당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는데 앞으로 해외 봉제공장에 파견된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경험 연구도 수행된다면, 여러 사례들을 통해서 여성 노동자들의 행위성들을 풍부하게 해석하면서 북한의 해외파견노동에서 드러나는 성별화된 권력의 속성을 심도있게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25 참고문헌 강채연,“북한 여성노동력의 경제적 의미와 인권: 사회적 참여정책과 영향을 중심으로,” 『아시아여성연구』, 제 59 권 2 호(2020), 7~45 쪽. 김광진,“북한의 돈주와 평양 자본주의”, 『북한』 579 호(2020), 42~48 쪽. 김승재, 『세계의 옷공장, 북한』( 서울, 늘품플러스, 2020). 박정진,“국제 정치 경제적 관점에서 본 김정은 시대의 북한관광 변화 연구- 관광객 유치 해외 공급망과 외래관 광객 유치 여행사 중심으로”, 『관광연구저널』, 제 32 권 제 6 호(2018), 77~90 쪽. 박재영,“파독 간호사광부의 독일정착과 삼각이민 연구,” 『다문화콘텐츠연구』, 제 15 집(2013), 335~364 쪽. 윤여상·이승주, 『북한해외노동자 현황과 인권실태』( 서울: 북한인권정보센터, 2015). 윤여상·이승주. 『북한 밖의 북한: 폴란드, 몽골 북한 해외 노동자의 삶과 인권실태』( 서울: 북한인권정보센터, 2016). 이상신·오경섭·임예준, 『북한 해외노동자 실태 연구』( 서울: 통일연구원, 2017). 이승철·이용희·김부헌,“중국 대북 접경지역의 북한 노동력 진입 유형과 요인,” 『한국경제지리학회지』 제 22 권 제 4 호(2019), 438~457 쪽. 이용희,“북한 노동자 외국 파견 정책의 추이와 전망,” 『국제통상연구』, 제 21 권 4 호 (2016), 111~138 쪽. 이애리아·이창호, 『연해주 지역 북한 노동자의 실태와 인권』( 서울: 통일연구원, 2015). 이종운·케빈 그레이,“북한 의류 생산네트워크와 UN 제재”, 『한국경제지리학회지』, 제 23 권 제 4 호(2020), 373~394 쪽. 이철수·이다혜 외, 『북한을 파견하다』(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20) 이혜정·강성현,“문헌으로 본 김정은 시대 북한의 관광산업 인식”, 『국가전략』, 제 26 권 3 호(2020), 151~178 쪽. 윤애림,“이주노동의 맥락에서 본 북한 해외파견노동자의 문제,” 『민주법학』, 제 73 호(2020), 191~219 쪽. 정영철,“북한 경제의 변화- 시장, 돈주, 그리고 국가의 재등장”, 『역사비평』, 126 호(2019), 134~159 쪽. 26 정현주,“이주, 젠더, 스케일: 페미니스트 이주 연구의 새로운 지형과 쟁점”, 『대한지리학회지』, 제 43 권 제 6 호 (2008), 894~913 쪽. 최영윤,“북한 해외 노동자 현황: 통계데이터 중심으로,” 『 KDI 북한경제리뷰』, 2017 년 2 월호(2017), 101~121 쪽. 최영진,“환동해권 체제이행국가의 평화구축 방안: 중국, 러시아 및 몽골에서 북한노동자들의 인권침해 사례를 중심으로,” 『평화학연구』, 제 17 권 1 호(2016), 33~62 쪽. 통일연구원, 『북한인권백서 2016 』( 서울: 통일연구원, 2016). 하상우,“이중적 권력기제, 몸 정치의 발생: 태국 북한식당 공연 사례연구를 중심으로,” 『무용역사기록학』, 제 55 권(2019), 353~371 쪽. Breuker, Remco and Imke van Gardingen(eds.), People for Profit: North Korean Forced Labour on a Global Scale(Leiden Asia Centre Press, 2018). Figueroa- Domecqa, Cristina, Anna de Jong, and Allan M. Williams,“Gender, tourism& entrepreneurship: A critical review”, Annals of Tourism Research(2020), Vol. 84, pp.1~13. Lankov. Andrei, Peter Ward and Kim Jiyoung,“The North Korean Workers in Russia: Problematizing the “Forced Labor” Discourse,” Asian Perspecitves, Vol.44, No.1(2020), pp.31~53. Rim, Yejoon,“Human rights of North Korean migrant workers: Opportunity to work or risk of forced labour?” Netherlands Quarterly of Human Rights Vol. 35, No. I(2017), pp. 51~68. Piper, Nicola,“Feminization of Migration and the Social Dimensions of Development: the Asian Case.” Third World Quarterly Vol.29, No.7(2008), pp. 1287~1303. Sassen, Saskia.,“Global cities and survival circuits,” in Ehrenreich, B. and Hochschild, A. R.(eds.), Global Woman: Nannies, Maids, and Sex Workers in the New Economy(New York: Metropolitan Books, 2002), pp. 254~274 27 저자소개 이지연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현재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에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 로는‘탈북 여성의 어머니되기와 소속의 정치학’,‘탈북민 북한 가족 송금의 수행성과 통치성’,‘탈북 여성들의 초 국적 이동과 유연한 시민권의 명암: 서구 국가에서 난민 경험을 하고 남한에 재입국한 사례들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기관소개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한국사무소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은 1925 년에 설립된 독일 정치재단이다. 재단의 활동은 사회민주주의의 핵심이자 가치 인 자유, 정의, 연대에 중점을 두고 있다.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한국사무소는 1967 년에 개설되었고, 한반도 및 동아시아 평화구축과 사회적 평등을 토대로한 경제·사회정책 추진에 기여하는 것을 기본 목표로 한다. 발행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한국사무소 (03131)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88 삼환빌딩 1101 호 Tel.+82-2-745-2648 Fax.+82-2-745-6684 Email: info.korea@fes.de *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이 발간한 출판물은 서면동의 없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될 수 없습니다. * 본 보고서에 수록된 내용은 집필자의 견해이며, 재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