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기오스 파판드레오가 이끄는 중도연합이 53 퍼센트라는 압도적인 승리를 달성하였다. 그는 이 선거 결과를 통해 국민이 극우파와 군대가 병립된 정치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상태에 종지부를 찍으라는 과제를 준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군대를 정화하고자 하는 그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때까지도 국왕 콘스탄티노스는 군대가 자신의 통제 하에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파판드레오가 다시 권력을 잡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하여 군 지도부와 함께"헌법의 예외적 규정"을 작성하였다. 국왕과 군 장성들은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방어하기 위해 비교적 온건한"비상사태 체제"를 찬성하였다. 그러나 대령들은 장성들보다 훨씬 더 많은 준비를 하였고 1967 년 4 월 21 일 쿠데타를 감행하였다. 훗날 게오기오스 파판드레오의 아들이자 중도연합 좌파의 지도자였던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오는 당시 상황에 대해 "그들은 우리가 잠자고 있을 때 공격하였다"라고 설명하였다. 스틸리아노스 파타코스 대령이 탱크로 의사당을 포위하고 정부를 사퇴시켰을 때 그리스의 정치 엘리트들은 실제로 잠자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메타포적인 의미에서 정당 정치의 엘리트들이 수개월 동안 군부 간섭의 위험성을 간과했기 때문에 잠을 잤다고 하는 것이다. 그 후 7 년간 그리스는 군부 독재의 비상 사태하에 놓이게 된다. 군부 독재의 성립과 붕괴 1967 년 4 월 21 일의 군사 쿠데타는,- 대령들의 표현에 따르면„1967 년 4 월 21 일의 혁명“ 인- 그리스 군대의 중∙하급 장교들이 일으킨 것이다. 육군 대령 게오기오스 파파도폴로스를 중심으로 쿠데타를 주도한 사람들은 겨우 15 명에서 20 명 밖에 되지 않았으나 이들이 약 500 명의 장교들을 동원할 수 있었다. 이들 대령들의 조직적, 이념적 기원은 소위 말하는"그리스 장교의 성스러운 연합"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조직은 1950 년대 초 결성된 것으로 민족주의적이고 반공 이념을 내세우는 장교들이 은밀히 만든 단체였다. 이 모임이 강제 해산되자 1958 년 더 극단적으로 민족주의적이고 반공주의적, 반민주적인 젊은 서민 출신의 장교들의 모임인 소위"새로운 장교들의 민족연합"이 형성되었다. 그들의 목표는 내전이 종결된 이후 커져가는 공산주의자들의 세력을 막아내고 민족, 고향 그리고 민족주의 우파 진영, 즉 사회적 종전 체제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4
Druckschrift
[Greece's transition from dictatorship to democracy: : superficial reconciliation with the past and resistance to modernity ; speech at the international conference on "Political Development after Democratisation. A comparison of Portugal, Spain, Greece and South Korea" ... conference co-organized by the Korea Democracy Foundation and the F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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